
성벽 너머로 흐르는 이야기
조심스레 성벽을 넘어
귓가에 스며드는 것은,
돌과 흙에 깃든 오래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충청남도 서산, 해미읍성.
푸른 하늘과 맞닿은 고즈넉한 성곽 아래,
오랜 세월이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결들이
잔잔한 숨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햇살은 성돌 사이로 포근히 스며들고,
바람은 오래된 기억을 가만히 어루만집니다.
해미읍성은 단순한 유적이 아닙니다.
이 곳은, 지나간 시간과 오늘이 포개어
살며시 숨 쉬는 '이야기의 정원'입니다.
🏯 해미읍성, 이름부터 아름다운 이야기
'해미(海美)'
바다처럼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을 품은 이름입니다.
1407년, 정해현과 여미현이 하나가 되며 '해미'라는 이름이 태어났고,
그 이름처럼 이 고장에는 바다의 넉넉함과 들꽃 같은 아름다움이 머물렀습니다.
이 곳은,
그저 흘러간 역사를 박제해놓은 공간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이름 속에 고난과 영광, 그리고 사람들의 숨결이 살아 있습니다.

⚔️ 군사 요충지에서 삶의 터전으로
1417년, 조선 태종의 명으로 축조가 시작되어
세
종 3년(1421년)에 완공된 해미읍성은,
당대 최고의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느껴집니다.
치열한 시대를 지키려 했던 누군가의 땀방울과 숨결이
아직도 돌과 흙 사이에 스며 있다는 것을요.
또한 효종 3년, 병영이 옮겨간 이후에는
이 곳이 고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품는 읍성이 되었습니다.
총 둘레 약 1.8km, 성벽 높이 약 5m.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마음을 더 깊이 울립니다.
✨ 이순신 장군과 정약용 선생이 거닐던 길
해미읍성은 조선의 별들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선조 12년,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서 10개월간 근무했던 자리.
정조 15년, 정약용 선생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잠시 머물렀던 그 시간의 조각들이
해미읍성에는 고요히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본 성곽,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
쩌면 우리도 그들의 숨결을 아주 살짝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 순교의 아픔이 스민 땅
해미읍성은 또 한 편,
고통과 신념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중심지였던 이곳에서
약 1,000여 명의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미읍성 안, 회화나무 아래.
쇠창살 감옥터 옆에 서면,
말없이 흐르는 눈물 같은 바람을 느끼게 됩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땅을 찾아 순교자들을 기렸던 순간,
해미읍성은 단순한 유적이 아닌,
인류 보편의 사랑과 용서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해미읍성
봄이면, 성벽 너머로 벚꽃이 소곤거리고,
여름이면, 짙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생명력을 노래합니다.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성을 감싸 안으며
노을과 맞닿은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되고,
겨울에는 고요한 눈꽃이 내려앉아
세상 어디보다 평온한 풍경을 선물해 줍니다.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해미읍성은 늘 다른 얼굴로 우리를 맞아줍니다.
🎉 살아있는 문화, 해미읍성축제
매년 가을,
해미읍성에서는 조선시대 문화와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서산해미읍성축제'가 열립니다.
고즈넉한 성 안을 누비는 행렬,
활쏘기, 병영체험, 전통 주막 음식까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특히, 해미읍성 안 전통 주막에서는
'교황님이 드셨던 키스링 마늘빵'도 맛볼 수 있다는 사실!
소박한 맛에서 묘한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 해미읍성, 이렇게 다녀오세요!
- 위치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
- 입장료 : 무료
- 주차 : 넉넉한 무료 주차장 이용 가능
주변에는 해미순교성지, 해미읍성박물관 등도 있어
하루 나들이 코스로 안성맞춤입니다.

🌿 해미읍성에서 건져올린 찰나의 시간
해가 서서히 성벽 너머로 넘어가고,
담장 아래 작은 꽃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때
해미읍성은 비로소, 하루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칩니다.
바람은 낮게 숨을 고르고,
햇살은 성돌 위에 포근한 이불처럼 내려앉습니다.
바쁘게 달리던 마음도,
소란스런 생각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성벽에 기대어 조용히 잠이 듭니다.
여러분도 느껴보세요.
돌담 너머로 번져오는 오래된 온기와,
처음 만나는 듯한 따뜻한 고요를.
오늘, 해미읍성은
당신을 위한 이야기를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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